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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r's Unwomanly Face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 알렉시예비치의 목소리로 쓴 전쟁의 민낯

by gimc15484 2025. 7. 5.

War's Unwomanly Face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책 표지

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대표작 『War's Unwomanly Face』(『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소련 여성 500여 명의 목소리를 기록한 구술문학이다. 전쟁의 영웅적 서사 뒤에 가려졌던 여성의 고통과 진실을 드러내며, 전쟁문학의 경계를 넘어선 이 작품은 ‘목소리의 문학’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연 기념비적 저작으로 평가받는다.

총을 든 여성들, 침묵을 말하다

전쟁은 흔히 남성의 시선으로 기록된다. 전장의 영웅, 전략과 전술, 전후 복귀라는 구조 안에서 여성은 ‘뒷전의 존재’로만 그려지곤 했다. 그러나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War's Unwomanly Face』는 이 고정관념을 송두리째 뒤흔든다. 그녀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소련 여성 병사 500여 명을 수년에 걸쳐 인터뷰했고, 그 기록은 단순한 증언이 아닌, 한 편의 문학으로 거듭났다. 책의 제목은 이미 이 작품의 메시지를 함축한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말은, 여성의 감정과 기억, 공포, 상실, 그리고 사라진 청춘이 전쟁이라는 거대한 서사 속에서 얼마나 배제되어 왔는지를 지적하는 선언이다. 이 책은 ‘말해지지 않은 역사’를 말하게 하고, 문학이라는 형식을 통해 기억을 되살린다. 알렉시예비치는 그 어떤 화려한 수식도 덧붙이지 않는다. 그녀는 질문만 하고, 듣는다. 수집된 목소리들은 때로는 거칠고, 때로는 고요하지만, 모두 진실의 언어로 울려 퍼진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전쟁문학이자 여성문학이며, 무엇보다 인간문학이다.

구술문학의 탄생 – 여성의 입으로 쓰인 역사

『War's Unwomanly Face』는 소설이 아니다. 그렇다고 단순한 르포도 아니다. 이 작품은 ‘구술문학’이라는 독자적 장르를 개척한 알렉시예비치의 방법론이 정점에 이른 결과물이다. 각 장마다 등장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는 일관된 서사가 아닌 파편화된 증언들로 구성되지만, 오히려 그 단편성 속에서 전쟁의 참상이 더욱 실감 나게 다가온다. 참전 여성들은 간호병, 저격수, 통신병, 항공기 정비병, 의무대원 등 다양한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이들이 경험한 전쟁은 단지 총과 포탄의 교차가 아니었다. 머리카락을 자르고 남자 속옷을 입으며 여성성을 지워야 했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전우에게서도, 사회로부터도 존중받지 못했다. 어떤 이는 참호에서 첫사랑을 잃었고, 어떤 이는 아이를 낳지 못하게 되었다. 이 책은 전쟁을 '경험한' 사람들이 아니라, 그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문장 사이에는 말로 다 담지 못한 침묵이 있고, 침묵 뒤에는 고통과 상실, 그리고 억눌린 분노가 흐른다. 알렉시예비치는 이 목소리들을 문학으로 승화시켰고, 이는 단순한 역사적 가치에 그치지 않고 강력한 서사적 파괴력을 지닌다. 무엇보다 이 책은 문학적 스타일을 통해 진실을 더욱 강하게 부각한다. 군더더기 없는 문장, 반복되는 감정, 그리고 화자 간의 충돌은 독자에게 수백 명의 인물이 한꺼번에 말을 걸어오는 듯한 몰입감을 준다. 알렉시예비치 특유의 '편집된 목소리'는 사실을 구성하면서도, 그 너머의 인간성까지 전한다.

기억은 기록되어야 한다 – 말해지지 않은 진실의 힘

『War's Unwomanly Face』는 단순히 전쟁 속 여성들의 이야기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말해지지 않은 진실, 침묵 속에 갇힌 기억, 그리고 오랫동안 배제되어 온 역사적 주체들의 귀환을 의미한다. 이 책은 ‘말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을 문학적으로 되살리는 작업이다. 노벨문학상 수상 당시 스웨덴 한림원은 알렉시예비치를 “고통과 용기의 연대기로 새로운 장르를 창조한 작가”라고 평했다. 그 중심에는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가 있었다. 이 책은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왜 지금까지 이 이야기들은 묻혀 있었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침묵 앞에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가?" 알렉시예비치의 문학은 기록이자 증언이며, 그 자체로 윤리적 실천이다. 『War's Unwomanly Face』는 여전히 전쟁이 반복되고 있는 시대에,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강력한 경고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단지 읽는 것이 아니라, 함께 들어야 할 문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