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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ör levande och döda 살아있는 이들과 죽은 이들을 위하여 – 트란스트뢰메르가 그린 시간과 침묵의 경계

by gimc15484 2025. 7. 6.

 

201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스웨덴 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의 『För levande och döda』는 생과 사, 기억과 시간, 자연과 인간의 경계를 시적 언어로 탐색한 대표작이다. 절제된 시어와 음악적 리듬, 명상적 사유가 녹아든 그의 시는 침묵 속에서 더 많은 것을 들려주며, 존재의 본질을 고요하게 응시하는 북유럽 시문학의 결정체로 평가받는다.

음악과 침묵 사이에서 피어난 존재의 시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Tomas Tranströmer)는 201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며 “농축된, 투명한 시로 새로운 실재에의 접근을 보여준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대표 시집 『För levande och döda』(1989, 한국어 번역 제목: 『살아있는 이들과 죽은 이들을 위하여』)는 그러한 문학 세계를 가장 명확히 드러내는 작품이다. 시인은 임상심리학자이자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다. 그의 시에는 음악적 감수성과 인간 내면에 대한 깊은 통찰이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För levande och döda』는 그런 감수성을 바탕으로 시간, 기억, 자연, 죽음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다루며, 동시에 북유럽의 정서와 철학을 품은 시집으로 평가받는다. 트란스트뢰메르의 시는 화려한 수사를 피하고, 대신 침묵과 여백을 통해 독자에게 사유의 공간을 건넨다. 그의 시를 읽는 일은, 마치 피아노 한 음이 공간을 가르듯 고요한 여운을 따라 걷는 일과도 같다.

시간의 층위와 존재의 조각들

『För levande och döda』는 시인의 성찰이 집약된 후기 시기의 대표작이다. 이 시집에서 트란스트뢰메르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언어를 통해, 존재의 다층성과 시간의 깊이를 포착한다. 그의 시 「추억은 잠든 자의 의식 속을 떠다닌다」에서는 기억이 단순한 과거의 재현이 아니라, 무의식 속에서 끊임없이 현재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작동함을 보여준다. 또한 「겨울의 긴 어둠」에서는 북유럽의 길고 암울한 계절을 배경으로, 인간의 내면을 투사한다. 어둠 속에서도 사물은 계속 존재하며, 침묵도 하나의 언어가 된다는 통찰은 트란스트뢰메르 특유의 시적 감각이다. 그는 자연을 묘사하면서도, 단순한 풍경화에 머무르지 않는다. “하늘 위로 흘러가는 구름은 / 나의 무의식에서 기어 나오는 생각”이라는 식의 구절은, 외부 세계와 내면이 어떻게 서로를 비춘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사례다. 이러한 시적 방식은 트란스트뢰메르가 단지 시인이 아니라, 존재 철학자임을 말해준다. 그의 시는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지금 이 순간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는 북유럽 특유의 성찰적 정서와 맞물려, 읽는 이로 하여금 자신만의 삶의 층위를 되짚게 만든다.

고요한 울림으로 남는 삶의 기록

『För levande och döda』는 삶과 죽음을 대립되는 것이 아닌, 연결된 것으로 바라보는 시인의 관점을 반영한다. 트란스트뢰메르는 한 인터뷰에서 “나는 시를 통해 생의 비밀을 드러내려 하기보다, 그 비밀을 예감하게 하려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 말처럼 그의 시는 해답을 제시하기보다, 독자에게 사유의 공간을 열어준다. 노벨문학상 선정 당시 스웨덴 한림원은 “그의 시는 극도의 절제와 시각적 강렬함, 존재의 핵심에 다가가는 침묵의 힘”을 찬양했다. 『살아있는 이들과 죽은 이들을 위하여』는 바로 그런 평가를 가장 잘 설명하는 시집이다. 그의 시는 음악처럼 읽히고, 명상처럼 머무르며, 한 편의 고요한 기도처럼 가슴에 남는다. 존재의 무게와 시간의 흐름, 그리고 인간 내면의 복잡성을 가장 단순하고도 깊이 있게 표현한 이 작품은, 북유럽 시문학의 정수를 넘어 세계문학사에 남을 유산이라 할 수 있다. 트란스트뢰메르의 시는 우리에게 묻는다. “말이 닿지 못하는 그곳에도, 시는 여전히 닿을 수 있는가?” 그 대답은 바로 이 시집 속에 고요히 숨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