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201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벨라루스 출신 작가로, 개인의 구술을 통해 집단의 역사와 감정을 기록하는 독특한 방식의 문학을 선보였습니다. 소비에트 사회와 그 붕괴, 전쟁과 재난 속에서 살아간 이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포착한 그녀의 대표작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체르노빌의 목소리》 등은 문학과 보도, 역사 서술의 경계를 허물며 전 세계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 글에서는 그녀의 독창적인 작법, 작품 세계, 노벨상 수상 배경과 그 의미를 심도 있게 조명합니다.
알렉시예비치는 어떻게 문학으로 ‘목소리’를 기록했는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Svetlana Alexievich)는 문학사에서 보기 드문 서술 방식을 구축한 작가입니다. 그녀는 소설가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글에 창작적 허구보다는 ‘사람들의 말’을 담았습니다.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 아프가니스탄 전쟁, 체르노빌 원전 사고 등 현대사의 격변기를 관통하며 살아온 평범한 사람들의 구술을 정리하고 편집하여, 독자에게 생생한 역사적 체험을 전달한 것입니다.
알렉시예비치는 전통적인 의미의 소설이나 픽션 작가가 아닙니다. 그녀의 작업은 저널리즘, 역사서술, 인터뷰, 르포르타주를 넘어 ‘문학’이라는 형식 속에서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습니다. 노벨위원회는 2015년 그녀에게 문학상을 수여하며 그 이유로 “고통과 용기, 그리고 평범한 인간의 목소리를 통한 타성적 문학 창조”를 꼽았습니다.
이 글에서는 알렉시예비치의 대표작과 함께 그녀가 어떠한 방식으로 집단의 기억을 포착했는지를 살펴보고, 노벨문학상 수상이 가지는 의미, 그리고 현대 문학 속에서 그녀의 위치에 대해 분석해보겠습니다. 단순히 작가 소개를 넘어서, 문학의 본질적 질문—‘무엇이 문학인가’—를 다시 묻게 만드는 그녀의 작업을 통해 우리는 독자로서 어떤 책임과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도 고민하게 될 것입니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와 구술문학의 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1983년 발표된 알렉시예비치의 대표작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소비에트 여성 군인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구성된 다큐멘터리 형식의 작품입니다. 전쟁에 참여한 여성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기록한 이 책은, 이전까지 역사 속에서 지워졌던 여성의 경험을 조명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 책은 일반적인 전쟁소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구성됩니다. 작가는 등장인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실제 존재하는 수백 명의 여성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말한 전쟁의 참상을 편집하여 연결합니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화자로서의 자리를 비우고, 오직 인터뷰이들의 감정과 언어, 침묵과 울음에 집중합니다.
이 작품은 출간 당시 소비에트 당국으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영웅적 서사에 익숙했던 국가 이념과는 달리, 이 책은 전쟁의 잔혹함, 여성 군인들의 트라우마, 굶주림과 공포, 인간성의 붕괴를 가감 없이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이후 세계 여러 나라에 번역되어 수많은 독자에게 감동과 충격을 주었고, ‘전쟁의 역사’가 아닌 ‘인간의 체험’을 중심에 두는 새로운 전쟁 문학의 길을 열었습니다.
알렉시예비치의 이러한 글쓰기 방식은 독자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진짜 이야기를 듣고 살아가는가?”, “기억과 증언은 누구의 것인가?” 그녀는 문학이 단지 아름다운 언어의 예술이 아닌, 존재와 진실을 드러내는 매개체가 되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이 책은 그녀의 문학적 지향과 윤리적 자세가 가장 집약된 출발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노벨문학상 수상 배경과 그녀의 문학적 위상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201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며 동유럽 출신 작가로는 드물게 세계 문학의 중심에 섰습니다. 노벨위원회는 그녀의 작품을 “우리 시대의 고통과 용기에 대한 기념비적 작업”으로 평가했고, 이는 그녀가 단순한 구술 편집자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진실을 끌어내는 ‘문학적 청취자’ 임을 인정한 표현이었습니다.
그녀의 문학은 수많은 목소리로 이루어진 ‘다성적 합창’에 가깝습니다. 《체르노빌의 목소리》에서는 원전 사고 생존자들의 증언을, 《아연 소년들》에서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했던 병사들의 이야기를 수집하여 독자에게 ‘사건’이 아닌 ‘삶’을 전달합니다. 알렉시예비치에게 중요한 것은 역사적 팩트 그 자체보다, 그것이 사람들에게 남긴 감정과 상처, 기억의 결입니다.
그녀의 수상은 문학의 경계를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기존의 문학이 픽션에 기반한 이야기와 작가의 창작을 중심으로 했다면, 알렉시예비치는 현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수집하여 ‘문학으로 엮는’ 방식을 통해 독창적인 길을 열었습니다. 이는 저널리즘과 문학의 중간 지점, ‘문학적 논픽션’이라는 새로운 장르로도 불립니다.
그녀의 작업은 또한 문학이 사회적 책임을 질 수 있는 방식, 잊힌 이들의 기억을 기록하는 윤리적 실천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알렉시예비치는 침묵을 강요당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복원하며, 독자들에게 ‘경청’이라는 행위를 요구합니다. 그 점에서 그녀의 문학은 단지 읽히는 것이 아니라, 듣고 기억되는 ‘체험’ 그 자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왜 지금, 알렉시예비치를 읽어야 하는가
현대 사회는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인 동시에, 진실은 점점 더 묻히는 시대입니다. 가짜뉴스와 편향된 담론이 범람하는 가운데,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 진실에 접근하려는 알렉시예비치의 문학은 매우 강한 울림을 줍니다.
그녀의 작품은 단지 과거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억이 우리에게 어떤 윤리적 질문을 던지는지를 묻습니다. 《체르노빌의 목소리》에서 원전 사고 이후 삶이 완전히 달라진 사람들의 이야기, 《아연 소년들》에서 전쟁 후유증으로 정신적 고통을 겪는 병사들의 고백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인간의 고통과 회복, 침묵과 증언의 의미를 되짚게 만듭니다.
우리가 알렉시예비치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문학은 단지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현실을 마주하게 만드는 통찰의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글은 독자에게 고통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에 함께 귀 기울이게 만드는 힘을 가집니다.
또한 그녀는 문학을 통해 ‘기억의 정치’를 수행합니다. 잊힌 역사, 지워진 목소리, 말할 수 없었던 진실을 드러냄으로써 우리는 문학이 단지 감상의 대상이 아닌, 사회적 실천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말합니다. “나는 기억하는 법을 배우고, 기억하도록 돕는 작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말하고 싶지만 말하지 못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녀의 문학을 통해 그것을 ‘들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